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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세계 : 독서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 존 그린

by 김찬란 2024. 10. 22.

 

◈ 줄거리

열세 살에 갑상선 암 말기 진단을 받고 폐로 전이 되어 암세포 위성 병변이 자리 잡은 헤이즐은 암 환자들 모임인 서포트 그룹에 엄마의 권유로 참가하게 된다. 이 모임에서 알게 된 어거스터스 워터스는 골육종으로 한 쪽 다리를 절단했다. 둘은 모임에서 만나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헤이즐은 자신과 다르게 NEC(암세포의 징후가 없다) 상태인 어거스터스가 자기 죽음 이후 받을 상처가 걱정되어 그를 밀어낸다. 하지만 둘은 서로의 인생 책과 많은 생각들을 교류하며 계속 가까워졌고 그러는 와중 헤이즐이 좋아하는 [장엄한 고뇌]의 작가와 어거스터스가 연락이 닿는다. 헤이즐은 그를 보러 암스테르담에 직접 가고 싶어 하고 어거스터스는 아픈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 재단에 헤이즐과 함께 암스테르담에 가고싶다는 소원을 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헤이즐의 상태가 안 좋아지고 암스테르담 행은 그렇게 무산되는 듯 하는데...

 

◈ 완독 후 느낀 점

🥑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연코 헤이즐 그레이스가 아닌 어거스터스 워터스라고 말하겠다. 
책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온통 어거스터스가 사랑하는 비유적 상징이 넘쳐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어거스터스가 잘생겼다는 점이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영미권의 조금은 핀트가 다른 유-우-머와 미국 십 대들 특유의 자의식과잉이 들어간 문장들을 연결해 주고 현실이라면 외면했을 그의 모든 플러팅의 개연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안녕, 헤이즐’ 영화를 시청하지 않았기에 대략의 줄거리만 알 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연히 “사랑하는연인이병마와싸우며더욱돈독한사랑을만들다가결국한쪽이죽어버리는” (당연히 헤이즐이 죽을 줄 알았다.) 그런 슬픈 이야기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내 눈물 버튼이 된 것은 연인이 아닌 가족의 이야기였다. 

지극히 유교 사상에 찌들어서 자란 나는 부모의 사랑을 ‘효’로써 갚아나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자식 입장에서 이는 어떤 면에서는 부담이, 어떤 면에서는 기꺼운 점이 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자식의 입장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독서 기간 동안 ‘그럼 부모 입장에서 자식은 어떨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히 아픈 자식을 둔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이 책을 통해 나는 ‘자식이 부모에게 ‘효’라는 부채를 갖는다면 부모는 자식에게 ‘부양’의 짐을 얻는다’고 보았다. 특히나 질병 같은 특수한 경우,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이 선택지를 고른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특히 헤이즐처럼 죽음은 이미 확정이고 치료가 아닌 생명 연장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끝이 없는 병마와의 싸움에 선뜻 도전할 수 있을까?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은 있지만 부모는 자식의 병을 어디까지, 언제까지 부양할 수 있을까? 아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라면 이야기 속 헤이즐의 부모, 어거스터스의 부모, 아이작의 부모처럼 자식을 끝까지 챙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부분에서도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스탠스와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스탠스의 차이가 있고, 내가 생각하는 디폴트가 이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을 골라보자면 다음과 같다.
-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크다.
- 함께 추억할 사람을 잃는 건 마치 추억 그 자체를 잃는 것 같았다.

물론 마음에 담은 더 많은 문장이 있지만 두 문장으로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한한 시간을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이렇게 되니 오히려 ‘영원’이라는 개념은 유한함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거스터스의 추모사에서 헤이즐이 말한 것처럼 한정된 시간 속 무수히 많은 무한대에 추억이 쌓였다면, 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유한한 시간 속에 있는 커다란 무한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슬픈 것인가 보다.

 

◈ 문장수집

글을 쓰는 걸로 죽은 사람을 불멸화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글은 대상을 파묻을 뿐, 되살리지 못합니다

아빠에게 상처를 주는 게 싫었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잊고 살지만 진실은 냉혹하다. 내가 있어서 부모님이 기쁘실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의 고통도 나로 인해 시작되고 나로 인해 끝나는 거였다

“돔 페리뇽이 샴페인을 발명한 다음 뭐라고 했는지 아시나요?” 그가 멋진 액센트가 있는 말투로 말했다. ”아뇨.” 내가 대답했다. ”그는 동료 수도사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죠. ‘빨리 오게. 난 별을 맛보았다네.’ 암스테르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세상은 소원을 들어주는 공장이 아니다.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크대.”

나는 아이작에게 연락했고 그는 인생과 우주와 신을 죄다 욕하고 필요할 때에는 부술 만한 망할 트로피들이 왜 하나도 없는거냐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이었다. 내가 어거스터스 워터스의 죽음에 대해서 정말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어거스터스 워터스라니

함께 추억할 사람을 잃는 건 마치 추억 그 자체를 잃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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